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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세기 프랑스 역사

by 새새로운하루 2024.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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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개

프랑스는 프랑스 공화국을 줄인말이며 수도는 파리입니다.

13개의 주요 지역과 94개의 성으로 구분됩니다.

유럽 서부에 위치해 있습니다.

벨기에, 룩셈부르크,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모나코, 스페인 및 안도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북서쪽으로는 영국 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해양성, 대륙성, 지중해형, 산지 기후가 공존합니다.

프랑스의 지형은 남동쪽이 높고 북서쪽이 낮습니다.

총 면적은 550,000 제곱킬로미터입니다. 해안선은 2,700킬로미터, 육선은 2,800킬로미터입니다.

2024년 1월 기준 프랑스의 인구는 6,837만명입니다.

프랑스인 대부분은 가톨릭 신자이며 공용어로 프랑스어를 사용합니다.

 

 

프랑스 흐름

5세기에 프랑크인들이 이주해 프랑크 왕국을 세웁니다.

10~14세기 카페 왕조에 프랑스 왕국으로 개칭합니다.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 군주제를 폐지하는 인권선언을 합니다.

1792년 제 1공화국이 수립됩니다.

이후 나폴레옹, 제1제국, 부르봉왕조복고, 7월 왕조, 제2공화국, 제2제국, 제3공화국을 거칩니다.

1871년 3월 파리 인민들이 무장 봉기를 일으켜 파리 코뮌을 설립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는 연합국에 참가해 동맹국과의 전투에서 승리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침략을 받자 샤를 드골 장군은 반파시즘적인 '자유 프랑스' 운동을 조직합니다.

1944년 8월 파리는 해방됩니다.

1946년 10월 프랑스 제4공화국이 수립되고 1958년 제5공화국이 수립됩니다.

 

 

프랑스 경제

프랑스는 원자력, 항공, 우주 및 철도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산업 국가 중 하나입니다.

철강, 자동차 및 건설 산업은 3대 산업 입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유럽연합 창설국 및 NATO 회원국입니다.

또한 유네스코, 인터폴, 경제협력개발기구, 유럽의회 등 국제 및 지역 조직의 본부가 있는 곳 입니다.

 

프랑스 역사

갈리아 시대(5세기 이전)

프랑스의 옛 이름은 갈리아입니다.

구석시대부터 철기시대까지 다양한 인류문화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30만~40만년 전 인간의 턱뼈 화석,

프랑스 남서부 라스코 등의 동굴에서 2만년 전 인물조각과 동물벽화,

프랑스 서부의 3000 ~ 4000년 전 브르타뉴 거석묘비와 토비 등이 있습니다.

 

기원전 1000년경 켈트족은 중부 유럽의 산악 지대에서 이주합니다.

로마인들은 그곳을 갈리아, 지역 주민을 갈리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갈리아 지역이 발전합니다.

 

418년 서고트인들이 아키텐에 왕국을 세웁니다.

443년 부르고뉴인들이 손 강과 롱 강 유역에 왕국을 세우고

브리튼인들이 오늘날의 브르타뉴를 점령합니다.

451년 아틸라 주도로 갈리아를 침공한 흉인은 로마와 야만인 연합군에 패배합니다.

5세기 후반 뫼즈강과 에스코강 사이에 정착한 프랑크인들이 국왕 클로비스 1세가 이끄는

대규모 서침으로 로마의 군사장관 시아그리우스와 알레마니족, 서고트 족을 차례로 격파합니다.

481년 프랑크인들은 부르고뉴 왕국와 지중해 연안을 제외한 갈리아를 모두 점령합니다.

파리로 이주해 프랑크 왕국을 세웁니다.

 

5 ~ 10세기

메로윈 왕조는 프랑크 왕국의 첫 번째 왕조 입니다.

481년 메로윈의 손자 크로비 1세가 갈리아에서 서로마 제국의 세력을 물리치고 메로윈 왕조를 건국 합니다.

 

8세기 초 동프랑크와 서프랑크의 경쟁은 치열합니다.

동프랑크 샤를은 북쪽에서 질서를 회복하고 732년 푸아티에전투에서 아랍인의 침입을 물리칩니다.

751년 샤를의 아들인 피핀은 교황의 지지를 받아 정식으로 즉위합니다.(갈로린왕조)

768년 피핀의 아들 샤를마뉴가 왕위를 계승합니다.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샤를르만 제국은 셋으로 나뉘고, 그 중 서프랑크 왕국이 프랑스로 발전합니다.

 

클로비에 이어 휴고 카페시기까지 500년 동안 야만족의 침입, 안팎의 전쟁이 끊임없이 발생했습니다.

봉건 자연경제의 만연, 영유권의 확대, 귀족의 원심성향과 독립성의 강화는 국가 불통일을 초래했습니다.

 

10 ~ 15세기

카페왕조와 발루아 왕조가 포함됩니다.

중세 중기에 프랑스의 농업, 수공업 및 상업이 발전합니다.

인구는 점차 증가하여 1420년대에 약 1600만명에 이릅니다.

교통 요충지와 시장에 신흥 도시가 많이 생겨납니다.

11세기부터 일부 도시에서 코뮌 운동이 일어나 무장 봉기나 금전적 매매를 통해 자치권을 획득합니다.

도시가 생기면서 새로운 사회계급인 시민계급이 생겨납니다.

상품 통화 관계의 발전은 국내 경제 관계를 강화하고 국가 통일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합니다.

 

카페왕조 초기에는 왕실이 직접 센 강과 루아르 강을 통제했습니다.

1328년 사를 4세가 죽은 후,

카페 가문의 직계에는 아들이 없어 펀치발루아 가문의 필리프 6세가 왕위를 계승해 발루아 왕조를 세웁니다.

1337년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 전쟁이 발발합니다.

1358년 파리 북부에서 봉기가 일어나 잔다르크가 배출됩니다.

1453년 백년전쟁은 프랑스의 승리로 끝납니다.

15세기 말까지 부르고뉴, 비카디, 브르타뉴, 프로방스, 루시용 등 귀족들의 마지막 영토도 

프랑스 왕국의 영토로 병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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